
ELEMENTAL FRONTIER · 3화
답은 낮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대신 아랫길에서 땅의 정령들이 올라왔다. 가장 앞의 정령들이 뿌리 앞에 나무 방패를 세웠다. 물의 정령들은 샘 동쪽에 모였고, 능선에서는 바람의 긴 끈이 두 번 당겨졌다. 바람 정령들이 낮은 가지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루온은 불의 정령들을 둘로 나누었다. 큰 무리는 서쪽 길을 따라 샘 위로 갔다. 타오와 단, 모아는 그와 함께 남쪽 비탈에 남았다.
“내가 위를 받친다. 너희는 둘째 뿌리 앞까지.”
루온이 말했다.
“갈라지는 길 가운데를 먼저 잡아라. 그러면 나머지가 뒤따라간다. 동쪽 샘까지 쫓아가지 말고.”
타오는 둘째 뿌리를 보았다. 새싹이 있는 곳이었다.
“그 밑에—”
“알고 있다. 발 디딜 데를 봐라.”
루온은 타오의 눈높이로 몸을 낮췄다.
“할 수 있겠느냐?”
타오는 단과 모아를 보았다. 단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고, 모아는 비탈을 살피고 있었다. 타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첫 부딪침은 높은 곳에서 났다. 금속과 돌이 맞붙는 소리가 가지 사이를 타고 내려왔다. 타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옆의 흙이 튀었다. 단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앞 봐.”
그들은 함께 뿌리를 넘었다.
타오의 발이 앞서 나가자 단의 걸음이 그 안으로 겹쳤다. 옆구리에서 낯선 따뜻함이 퍼졌다. 모아가 뒤에서 어깨를 붙였다. 타오가 보던 뿌리가 낮아지고, 머리 위의 가지가 가까워졌다. 세 갈래의 불꽃이 한쪽으로 길게 흔들리다 굵은 하나로 모였다.
커진 손 안에서 늘 쓰던 검의 자루가 가늘게 느껴졌다. 타오는 손가락을 한 번 폈다가 쥐었다. 단이 늘 검 끝을 왼쪽으로 기울였다는 것을 알았다. 손목이 먼저 그쪽으로 돌아갔다.
뜨겁게 달아오른 검은 돌의 감촉이 발바닥에 남았다. 단이 어릴 때 누웠던 자리였다. 작은 정령들이 계속 밀려와 단의 발끝을 제 베개처럼 썼다. 불편해서 자리를 옮기려다가, 모아가 돌 한가운데 누워 보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그냥 누워 있던 오후였다.
타오는 그곳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동시에 다른 아침이 떠올랐다. 낮은 천장 밑의 옛 집. 틈으로 들어오는 빛이 벽을 타고 내려오면 누군가 바닥에 손을 대어 햇빛 모양을 따라갔다. 그 작은 손은 모아의 것이었다. 타오가 아는 모아보다 훨씬 작았다.
몸 안에서 모아가 무릎을 조금 굽혔다. 비탈의 흙을 살피는 버릇이었다. 타오의 발도 함께 멈칫했다.
앞에서 방패가 부딪쳤다.
타오는 검을 들어 나무 방패의 가장자리를 밀었다. 굵어진 팔에 힘이 실렸다. 방패를 든 땅 정령이 두 걸음 밀려났다. 타오는 따라붙다가 멈췄다. 그 뒤에 마루가 있었다.
마루도 그를 알아본 것 같았다. 다만 시선은 타오의 얼굴보다 그의 발 쪽으로 먼저 내려갔다.
“거긴 밟지 마.”
다른 땅 정령이 마루의 어깨를 밀었다. 방패가 돌아왔고, 타오는 검날로 막았다. 충격이 어깨를 울렸다. 타오는 단과 모아도 같은 통증에 움츠러드는 것을 느꼈다. 단의 힘이 앞으로 쏠렸다. 타오도 밀었다. 마루는 뒤로 물러났다.
위쪽에서 루온이 외쳤다.
“지금이다!”
길이 열렸다.
둘째 뿌리 위에 서 있던 정령들이 오른쪽으로 갈라졌다. 샘으로 오르는 턱이 보였다. 거기만 넘으면 남쪽 길과 고갯길 사이에 설 수 있었다. 루온의 뒤에 있던 불 정령들이 달려왔다.
타오는 몸을 돌렸다.
그때 바닥에서 가는 소리가 났다.
그는 처음에 뿌리 밑의 나뭇가지가 부러진 줄 알았다. 아래를 보니, 며칠 동안 받쳐 두었던 돌 하나가 굴러가고 있었다. 돌은 그가 멈춰 섰던 자리에서 시작해 여울이 파 둔 홈을 지나 떨어졌다. 물길 가장자리가 함께 주저앉았다.
새싹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낮은 가지가 이미 치워져 있었다. 불의 정령들이 지나오며 걷어 낸 가지였다. 전투 중 방패 끝에 찍힌 흙과 물이 고였던 홈이 이어져, 작은 흙덩이가 뿌리에서 떨어지려 했다. 갈라진 틈은 그 아래 이끼 덮인 집까지 내려갔다. 틈에서 흙이 부스러질 때마다 안쪽의 이끼도 조금씩 처졌다.
타오는 발을 들었다. 앞으로 디디면 길목이었다. 아래로 내리면 새싹이 있었다.
발바닥에 검은 돌이 느껴졌다.
옛 집의 햇빛도 떠올랐다. 모아가 따라가던 작은 빛 조각. 타오는 마루가 이끼를 덮어 준 구멍을 보았다. 여울의 접힌 잎과 세이의 네 번째 자루가 차례로 떠올랐다.
뒤에서 누군가 그의 몸을 밀었다.
“비켜! 올라가!”
단의 힘이 다시 앞으로 기울었다. 타오는 손을 펴 땅을 짚었다.
우리 자리도 있어야 해.
목소리인지 자신의 생각인지 구분이 잘되지 않았다. 타오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얼른 턱을 당겼다. 머리 위의 큰 불꽃이 가지에 닿을 뻔했다. 그는 몸을 더 낮췄다.
“알아.”
그가 말했다.
“그런데 여기 밟으면 없어져.”
손가락 아래로 흙이 흘렀다. 굵어진 손으로 새싹을 집으려다가 타오는 멈췄다. 지금 잡으면 뿌리와 흙이 따로 떨어질 것 같았다. 그는 떨어진 넓은 나무껍질을 새싹보다 아래쪽에 밀어 넣었다. 손목에 감은 두꺼운 천을 풀어 그 위에 겹쳐 놓고, 천 위로 손바닥을 대며 팔꿈치를 굽혔다.
몸 안에서 힘이 두 번 달라졌다. 단이 발을 고쳐 디뎠고, 모아가 더 낮게 무릎을 접었다. 큰 몸이 비탈을 가로막았다.
루온이 달려 내려왔다.
“길을 막지 마라!”
“집까지 갈라져요. 저 아래.”
“뒤로 빼면 돼. 내가 받치겠다.”
그러나 루온의 뒤에서 방패가 내려오고 있었다. 타오가 몸을 빼면 마루가 서 있는 자리까지 불 정령들이 밀고 들어갈 것이었다. 그들이 멈출 자리는 없었다.
타오는 검을 옆으로 놓았다.
“마루.”
마루가 고개를 들었다.
“여기.”
타오는 팔꿈치 옆의 좁은 틈을 보였다.
마루가 그 틈으로 들어오면 타오의 옆구리는 그대로 드러났다. 루온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마루는 창을 뒤쪽 정령에게 건네고 네 발로 기어왔다. 그의 뿔 같은 잎이 타오의 팔에 닿았다. 흙 아래로 손이 들어갔다.
마루의 손등이 타오의 손 옆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마루는 뜨거워진 천 끝을 한 겹 더 접어 타오의 손 밑에 밀어 넣었다.
“조금 들어.”
타오는 몸을 들어 올렸다. 마루의 손이 더 깊이 들어갔다. 흙이 조금씩 멈췄다.
옆길로 물의 정령 둘이 올라왔다. 한 명이 칼을 들었다. 타오는 검을 찾으려다 땅을 받친 손을 더 눌렀다.
“거기 서.”
여울의 목소리가 났다.
칼을 든 정령이 멈췄다. 여울은 그 정령을 지나 물길의 위쪽에 무릎을 꿇었다. 자기가 파 둔 홈을 손으로 막고, 물이 더 스며들지 않도록 돌추를 내려놓았다.
능선에서 끈이 세게 흔들렸다. 타오는 세이가 가지를 타고 오는 것을 보았다. 세이는 내려오다가 멈춰 뒤쪽을 돌아보았다. 바람의 정령들이 좁은 길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가 두 팔을 벌려 가로막자 맨 앞의 정령이 세이를 밀쳤다. 세이는 가지를 붙잡고 버텼다.
“여긴 돌아가!”
그가 외쳤다.
“샘으로 가려면 위로!”
아무도 싸움이 끝났다고 말하지 않았다. 높은 길에서는 여전히 검이 부딪쳤다. 세이가 가로막은 길에서도 고함이 이어졌다. 루온의 어깨 위로 방패 하나가 날아와 가지에 걸렸다.
루온은 타오의 빈 옆구리를 보다가 검을 뽑았다. 땅 정령들의 방패 앞으로 나가 검을 낮게 겨눴다.
“여기서 들어오지 마라. 나도 안 들어간다.”
마루는 흙을 잡은 채 뒤를 돌아보았다.
“둘째 뿌리까지다! 그 아래 창 내려!”
여울은 자신의 뒤에 있던 정령에게 짧게 손짓했다. 그는 물통 세 개가 매달린 막대를 들고 샘 위로 달려갔다. 타오는 그 통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빠르게 두 번, 길게 한 번. 아침에 듣던 소리와 달랐다.
루온이 타오를 내려다보았다.
“저 턱을 놓쳤다.”
타오는 샘으로 오르는 길을 보았다. 물의 정령들이 위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불의 큰 무리는 서쪽에서 더 올라가지 못하고 멈춰 있었다.
타오의 손바닥에서 흙이 한 줌 흘렀다.
“네.”
그가 말했다.
루온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검을 든 채 물러서서 흰 돌 하나를 발끝으로 굴렸다. 돌은 둘째 뿌리의 위쪽에 멈췄다.
“그럼 여기서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