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LEMENTAL FRONTIER · 4화
해가 나무 끝에 닿을 때까지 타오는 같은 자세로 있었다.
마루가 흙 밑에 받침을 넣고 물러난 뒤에도 바로 일어날 수 없었다. 단은 오른쪽 무릎이 저리다고 했고, 모아는 왼쪽이라고 했다. 타오는 어느 쪽이 자기 것인지 생각하다 둘 다 천천히 폈다.
큰 몸으로 일어서니 흰 돌이 더 작아 보였다. 타오는 검을 주워 허리에 걸었다. 검 끝이 뿌리에 부딪쳤다. 그는 검을 약간 세워 찼다. 단이 하던 대로였다.
위쪽 길에서도 부딪치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서쪽의 불 정령들은 내려와 새로 말뚝을 박았다. 샘 동쪽에는 물의 정령들이 남았다. 고갯길에서 내려온 바람 정령들은 통로의 입구에 앉았다. 누구도 샘을 혼자 차지하지 못한 채 해가 기울었다.
루온은 흰 돌 네 개를 둘째 뿌리 주변으로 옮겼다. 마루가 돌 하나를 발로 막았다.
“거긴 집이야.”
루온이 돌을 반 걸음 옮겼다. 여울은 돌 두 개 사이에 자신의 갈대 매듭을 묶었다. 세이는 위쪽 가지에 달린 끈을 내려 같은 자리에 이었다.
타오는 그들이 무엇을 정하는지 듣기 위해 가까이 갔다. 모아가 몸 안에서 너무 앞서지 말라고 했다. 큰 발을 놓을 자리는 여전히 좁았다.
“이 안에서는 오늘 밤까지 멈춘다.”
루온이 말했다.
“우리도.”
여울이 답했다.
마루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뿌리 밑의 집을 들여다보고, 새싹이 있던 흙덩이를 살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는 능선을 올려다보았다. 위쪽에서 끈을 잡고 있던 정령 하나가 짧게 두 번 당겼다. 세이가 같은 신호를 돌려보냈다.
“우리 쪽도 여기까지.”
말이 끝나자 타오는 주저앉았다. 멀리서 보면 꽤 점잖아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냥 무릎을 더 버티기 어려웠다. 머리 위의 불꽃도 아침보다 작았다.
여울이 물통을 내밀었다. 타오는 받았다가, 세 입으로 마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오래 마셨다.
“살 수 있어?”
그는 새싹을 보며 물었다.
마루가 흙을 눌러 보았다.
“내일 봐야 해.”
“잎은?”
“내일 보자니까.”
타오는 입을 다물었다.
세이가 조금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녁의 가는 햇빛이 가지 틈으로 내려왔다. 새싹에 닿지는 않았다. 타오는 그 빛이 어디에 멈추는지 손가락으로 짚었다. 조금만 위의 가지를 들면 되었다.
루온이 그의 손을 보았다.
“그건 치워도 되는 가지냐?”
마루가 위를 살폈다.
“끝은 말랐어.”
“내가 말린 것 아니다.”
루온이 말했다. 마루는 웃지 않았다. 다만 손을 뻗어 가지가 어디에 닿는지 확인했다.
“여기서 자르면 위는 남아.”
세이가 일어나 작은 끈을 감았다.
“자르고 떨어뜨리면 밑을 치니까 잡아 줄게.”
루온은 낫을 꺼냈다가 멈췄다.
여울이 비탈 아래를 보고 있었다.
“이걸로 내일 물길 못 내는 건 아니지?”
타오는 손바닥을 무릎에 눌렀다. 여울은 여전히 저 아래의 터전으로 물을 보내려 했다. 타오도 새싹이 이곳에 있기를 바랐다.
“꼭 여기여야 해?”
타오가 물었다.
여울은 끈을 풀어 돌추 두 개를 놓았다. 타오가 그걸 보려고 다가가자 단이 큰 몸을 조금 뒤로 당겼다. 무릎이 받침돌에 걸릴 뻔했다.
“저쪽은 뿌리. 이쪽은 턱. 그 사이가 여기야.”
마루가 돌추 하나를 옮겼다.
“이 뿌리 아래 빈틈을 쓰면?”
“네가 어제 막은 데잖아.”
“전부 파겠다고 하니까 막았지.”
“거길 얕게 파면 물이 조금밖에 못 가.”
“그럼 오늘은 조금 보내.”
여울은 아래쪽을 보았다. 타오는 그가 접은 잎 속의 붉은 흙을 떠올렸다.
“조금으로는 안 되는 데도 있어.”
여울의 말이 끝난 뒤로 아무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세이는 가지를 감은 끈을 풀지 않은 채 기다렸다. 나무 끝에서 첫 새가 울었다.
타오는 옆에 놓인 빈 물통을 끌어당겼다.
“이걸 들고 내려가면?”
여울은 그 통과 타오의 저린 무릎을 보았다.
“한 통으로는 모자라.”
루온이 허리의 물통을 풀어 그 옆에 놓았다.
“오갈 애들을 붙이겠다. 우리 쪽 몫도 나른다.”
세이는 여분의 끈을 꺼내 두 통의 손잡이를 이었다. 어깨에 걸어 보더니 끈을 조금 늘였다.
“이렇게 둘씩. 길이 좁은 데까진 내가 가 볼게.”
여울은 매듭을 당겨 본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큰 물길은 계속 찾을 거야.”
마루가 돌추를 집어 비탈 옆에 놓았다.
“같이 돌아보자. 자르면 안 되는 뿌리를 짚어 줄게.”
“그래도 아래가 더 마르면, 여기 선부터 다시 정해야 해.”
여울이 흰 돌을 가리켰다. 루온은 그 돌을 제 발끝으로 옮겨 보다가 제자리에 놓았다.
루온이 낫을 도로 넣었다.
“나는 저 가지를 열러 왔다. 물길까지 다 그리려고 온 건 아니야.”
그가 손으로 새싹 둘레를 그렸다.
“이만한 곳도 못 정하면, 내일 다시 똑같이 부딪친다.”
마루가 루온의 손끝을 따라 흙을 짚었다.
“이 아래 집들은 건드리지 마.”
“그늘이 그대로면 나는 동의 못 한다.”
“죽은 가지부터.”
“그 위는 나중에 보고.”
“뿌리는 내가 볼게.”
여울이 돌추를 거두며 말했다.
“물은 내가 볼 거야. 아래까지. 여기 젖었다고 끝난 걸로 하지 말고.”
세이가 쪼그려 앉았다.
“길은 내가 다녀 볼게. 올라가는 쪽도, 내려오는 쪽도.”
“넓게 내겠다는 말이잖아.”
마루가 말했다.
“일단 걸어 보고.”
세이는 짧은 끈을 마루에게 내밀었다.
“걸리는 데 묶어 둘게. 어디까지 손댈지는 같이 와서 봐.”
타오는 흰 돌 안의 작은 땅을 보았다. 가지를 모두 치우기에는 좁았다. 여울이 생각한 곧은 물길을 내기에도, 세이의 씨앗 자루들이 서로 비켜 가기에도 좁았다. 마루에게는 그 좁은 곳조차 집의 앞마당이었다.
루온이 먼 서쪽을 보았다. 불의 정령들이 말뚝을 더 높이 박고 있었다.
“저쪽에 설명해야 한다.”
“우리도.”
마루가 대답했다.
“오늘 여기서 진 걸로 아는 애들도 있어.”
세이는 돌조각을 꺼냈다. 새기다 만 네 번째 선을 엄지로 문질렀다.
“난 돌아가는 길이 늦어져.”
여울은 도구 끝에 묻은 흙을 떼었다. 조각이 떨어질 때마다 타오는 새싹의 뿌리를 보게 되었다.
“한 계절.”
여울이 말했다.
“길어.”
루온이 바로 답했다.
“숲을 만들겠다고 왔잖아.”
이번에는 루온이 입을 다물었다. 여울은 곧 자기 말이 너무 셌다고 느낀 듯 도구를 뒤집었다.
“비가 온 다음까지는 봐야 해. 여기서 조금씩 흘리는 게 저 아래에 닿는지도. 그동안 통은 계속 보내고.”
마루는 낫이 들어간 루온의 허리와 가지를 번갈아 보았다.
“나무도.”
세이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온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서쪽에서 온 불 정령을 불러 흰 돌의 경계를 한 바퀴 짚어 주고, 물통 둘을 들어 보였다. 그 정령이 돌아간 뒤 마루도 북쪽의 동료를 불렀다. 그는 뿌리와 돌 사이를 손으로 짚으며 낮게 이야기했다. 여울은 물통을 나르던 정령에게 갈대 매듭을 건넸고, 세이는 능선으로 올라가 끈에 매듭 하나를 더 묶었다.
그들이 돌아오는 동안 타오는 큰 손에 붙은 흙을 조금씩 떼었다.
서쪽의 불 정령이 먼저 돌아왔다. 그는 경계 밖의 길을 가리켰고, 루온은 그쪽은 막지 않는다고 답했다. 북쪽에서는 마루의 동료 둘이 와서 돌 안쪽의 집들을 살폈다. 마루가 같은 자리를 짚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울에게 돌아온 갈대 매듭에는 빈 물통 하나가 달려 있었다.
“해 뜨기 전부터 보내 달래.”
여울이 루온에게 통을 보였다. 루온은 받아 제 물통 옆에 놓았다. 능선에서는 세이가 묶은 매듭 아래로 긴 끈이 두 번 당겨졌다. 세이가 내려와 그 끈을 흰 돌까지 이었다.
루온은 각자의 손이 짚은 경계를 다시 보았다.
“이 안만이다.”
그가 말했다.
“죽은 가지를 먼저 열고. 다음 것은 같이 보고.”
여울은 갈대 매듭을 조금 바깥으로 옮겼다. 마루가 돌을 받쳤다. 세이는 위쪽의 끈을 그 자리에 맞춰 늘였다.
타오도 일어나 무언가를 하려 했다. 그러자 단이 안쪽에서 길게 한숨을 쉬었다. 모아가 웃었다. 웃음이 타오의 가슴을 울려 밖으로 조금 새어 나왔다.
“오늘은 앉아 있어.”
루온이 말했다.
타오는 앉았다.
다음 날 아침, 새싹은 아직 잎을 다 펴지 않았다.
타오는 한참을 들여다보고서 어제보다 조금 벌어졌다고 했다. 단은 똑같다고 했고, 모아는 흙 알갱이가 떨어졌다고 했다. 타오는 그제야 잎 사이에 끼어 있던 흙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여전히 한 몸이었다. 타오는 커진 손으로 작은 돌을 집을 때마다 두 번씩 고쳐 잡았다. 단은 자꾸 왼쪽에 놓으려 했고, 모아는 오른쪽 아래가 낫다고 했다.
“가운데 놓자.”
타오가 말했다.
그러다가 가운데에 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물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돌이 아니라 불의 표식이었다. 어젯밤 불 정령 하나가 세워 놓고 간 작은 황동 말뚝이었다. 꼭대기에 잎 모양의 불꽃이 새겨져 있었다. 타오는 그것을 보고 잠깐 기뻤다가, 밑에 고인 물을 보았다.
표식을 뽑자 물이 가늘게 흘렀다.
그는 물길 옆으로 두 뼘을 옮겨 말뚝을 다시 심었다. 큰 손으로 누르니 너무 깊이 들어갔다. 조금 뽑자 이번에는 기울었다.
마루가 다가와 말뚝 밑에 돌을 받쳤다.
“이렇게.”
타오는 손을 뗐다. 표식은 서 있었다.
여울이 물길을 살피며 내려왔다. 그 뒤로 불 정령 둘이 물통을 메고 아랫길로 갔다. 여울은 한 정령을 불러 갈대 매듭이 묶인 갈림길을 먼저 짚어 주었다. 세이는 어깨에 빈 자루를 하나 메고 있었다. 그는 오늘 떠나는 정령에게 씨앗을 나눠 맡겼다고 했다. 나머지를 가져갈 때까지 어디에 두었는지 잊지 않게 매듭을 더 묶어야 한다며, 마루의 손가락에서 짧은 끈을 받아 갔다.
루온은 마른 가지 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낫은 아직 허리에 있었다.
타오는 새싹 옆에 앉았다. 해가 비탈에 닿기까지는 조금 남아 있었다.
“내일은 내가 먼저 올 거야.”
그가 말했다.
“오늘 내가 먼저 왔는데.”
마루가 흙 묻은 손을 들었다.
“내일 얘기잖아.”
“물은 내가 먼저 봐야 해.”
여울이 말했다.
세이가 나뭇가지 위에서 다리를 흔들었다.
“난 지금부터 여기 있으면 되지?”
타오는 고개를 들어 세이를 보았다. 말을 하려다가, 머리 위의 가지가 조금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세이는 끈을 잡고 있었다. 루온이 자를 자리 아래로 떨어질 가지를 받치는 끈이었다.
마루가 손가락으로 나무껍질을 짚었다. 루온은 그보다 조금 아래에 낫을 댔다. 여울이 새싹 쪽으로 굴러온 작은 돌 하나를 집어 물길 옆에 놓았다.
타오는 커다란 손을 무릎에 올렸다.
새싹의 잎 끝에 아침빛이 닿았다.